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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도 부러워한 구 오페라극장 Alte Oper Frankfurt am Main
타우누스 정원을 지나면 구 오페라 극장_ Alte Oper 에 이른다.
새로 생긴 극장과의 구분을 위해 구 오페라극장(Alteoper)이라 부르지만 여전히 오페라와 발레 공연이 열리는 극장 건물이다. 1880년에 문을 열었으나 전쟁으로 파괴된 것을 시민들의 모금으로 다시 복원하였다.아름다운 건물, 큰 분수가 있는 광장, 그리고 주변의 풍경들까지 인상적이고, 특히 밤의 야경이 매력적이다.
혹시라도 여행 일정 중에 좋은 공연 있다면 알테 오퍼에서 저녁 시간을 채워보아도 좋을 것이다.알테 오퍼에서는 다양한 공연을 하고 있다. 가격대는 공연마다 차이가 있지만 대부분의 공연이29유로~90유로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알테 오퍼 공연 티켓 구매와 공연 일정 확인은 알테 오퍼에 있는 티켓 판매처(KASSE)와 온라인 사이트 alteroper.de 에서 하실 수 있다.
경제논리 앞세운 재개발 위기에서 프랑크푸르트 시민들이 사수한 구 오페라극장 Alte Oper
1944년3월23일 밤 프랑크푸르트 시내는 여기저기서 불길이 치솟았다. 프랑크푸르트 오퍼(Frankfurt Oper)도 연합군의 공습을 피해갈 수는 없었다. 제1차 세계대전 때도 폭격을 받았지만 파사드(건물의 정면)만 약간 손상을 입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극장의 파사드만 간신히 남겨 놓고 나머지는 거의 모두 파괴되고 말았다. 지붕까지 폭삭 내려앉았다.
프랑크푸르트 오퍼는1880년10월20일 모차르트의 ‘돈조반니’공연으로 막을 올렸다. 독일 황제 빌헬름1세도 참석했다.당시 객석수는2010석. 독일 황제 빌헬름1세는 극장 곳곳을 둘러보고 나서 “베를린에서는 이런 극장을 지을 엄두가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1869년 극장 신축을 제안한 것은 프랑크푸르트 시장 다니엘 하인리히 뭄 폰 슈바르젠슈타인이었다. 프랑크푸르트에는 도시의 규모나 높은 취향의 요구에 걸맞은 극장이 없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정작 신축 프로젝트를 시작한 것은75만 마르크를 모금한67명의 프랑크푸르트 시민들이었다. 모금액은200만 마르크로 불어났지만 예산에는 턱없이 모자랐다. 프랑크푸르트 출신 시인 아돌프 슈톨체(Adolf Stoltze)는 ‘진선미를 위해 시민들은 피를 바쳐야 한다’는 글을 발표하면서 시민들을 독려했다. 지금도 극장 파사드에는 ‘Dem Wahren, Schoenen, Guten’(진선미를 위해)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그리스 건축 양식에 기초한 르네상스 스타일의 이 건물은 드레스덴 오퍼를 설계한 고트프리트 젬퍼의 극장 양식과도 닮았다. 건축가 리하르트 루케는 착공5년만에 타계했고 공사는 예산 부족으로7년이나 걸렸다.
프랑크푸르트 시장은 오페라 극장의 잔해 위에 현대식 사무실 빌딩을 지으려고 했다. 헤센 주의 경제 장관을 지낸 루디 아른트는 장관 재직 시 ‘다이나마이트 루디’라는 별명으로 통했다. ‘독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잔해’를 작은 다이나마이트 한 방으로 쉽게 날려버리겠다고 해서 붙여진 별명이다. 그는 신축 건물을 짓는 것이 옛 건물을 복원하는 것보다 경제적 타당성이 높다고 생각했다.
‘오페라 하우스를 구하자’는 캐치 프레이즈를 내건 시민들은 모금운동을 전개했다. ‘프랑크푸르트 오페라 하우스를 위한 행동 집단’이 결성되었고 프리츠 디에츠가 초대 회장을 맡았다. 프랑크푸르트 지방 상공회의소 소장이기도 했던 그는 프랑크푸르트의 전통을 되살리는 것을 이 단체의 목표로 내세웠다. “이 오페라 하우스는 프랑크푸르트 문화사의 일부다. 프랑크푸르트가 현대식 상업을 위한 부동산 이상의 것을 보유하고 있음을 보여줘야 한다.”
1976년 루디 아른트 시장이 이끄는 프랑크푸르트 시의회는 여론에 밀려 오페라 하우스 재건을 위한 사업 승인을 내렸다. 1972년말까지 행동 집단의 모금액은1150만 마르크에 육박했다. 건립 기금 마련을 위한 특별 복권도 발행됐다.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이 지휘하는 베를린 필하모닉을 초청해 갈라 콘서트도 열었다(베를린 필하모닉은10년전 베를린 시민들의 도움으로 전용 콘서트홀 필하모니를 개관한 바 있다).
우선 급한 대로 건물 외벽 보강 공사부터 시작했다. 행동 집단과 시의회가 추천한 사람들로 실행 위원회가 구성되었고 새 건물은 ’다목적‘홀로 짓기로 했다. 콘서트홀과 컨벤션 홀 겸용 공간이다. 프랑크푸르트 오페라단은1951년 현대식 건물로 이미 개관했기 때문에 새로 단장한 극장은 처음부터 콘서트 홀로 꾸몄다. 건축가 브라운-슐록커만이 파사드 뒤의 인테리어 공사를 맡았다. 콘서트홀로 복원한 옛 건물은 ’알테 오퍼‘, 새로 지은 오페라 극장은 그냥 ’프랑크푸르트 오퍼‘라고 부른다. 그래서 ’알테 오퍼‘라고 해서 오페라 극장으로 착각하는 사람들도 많다. 복원 과정에서 로비 공간을 전시장, 미술 경매장 등으로 꾸미고 모차르트 홀(700석)까지 마련하다 보니 호화스런 계단은 살려내지 못했다.
총1조6000만 마르크를 들여 공사를 끝내고1981년8월21일 벤자민 브리튼의 ’전쟁 레퀴엠‘과 말러의 ’천인 교향곡‘ 연주로 문을 열었다. 마이클 길렌이 지휘한 당시 실황 녹음은CD로도 나와있다. 1981년8월 상량식 때 프랑크푸르트 시민 수천명이 오페라 광장에 모여 페가수스 조각이 지붕에 올라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며칠 후 공식 개관했다. 독일 연방 칼 카스텐스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프랑크푸르트 오페라하우스 오케스트라(지휘 미하일 길렌)이 말러의 ’천인 교향곡‘을 연주했다. 이곳에서는 음악회 외에도 기자회견, 기업 행사, 제품 설명회, 리셉션 등 다양한 행사가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