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정정보
한눈에 보는 여행코스
- 짤츠부르크 미라벨 궁, 정원
- 모짜르트 생가
- 짤츠부르크 대성당
- 짤츠부르크 요새
- 상 피터 교회, 묘지
- 짤츠부르크 축제 대극장
- 이동방법
- 도보
- 소요시간
- 최소 5시간 ~ 최대 6시간
- 여행지역
- 잘츠부르크
지도보기
짤츠부르크 라는 이름으로 1400 여년의 역사를 간직한 신성로마제국 공인 기독 도시, 그 성스럽고, 유구하고, 영화로움을
간직하고 있는 주요 관광 명소들, 사운드 오브 뮤직의 배경들, 모차르트를 탄생시킨 음악의 고장 답게 짤츠부르크
여름 축제현장들을 반나절 동안 걸어서 돌아본다.
city card (25 Euro) 를 끊으면 모든 박물관, 요새 올라가는 전동차, Monchsberg 엘리베이터, Untersberg 산 케이블카 ,
짤자흐 강 유람선, 버스등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코스안내
1짤츠부르크 미라벨 궁, 정원
짤츠부르크는 독일어로 소금 성을 뜻하는데, 근처에 소금광산이 많다.
기원전 700년대에는 원주민인 켈텐족이 소금을 생산했고 기원전 15년 로마제국은 이곳에
Juvavum 이란 도시를 세워 여러 마을들을 통합했고 도시의 지위를 부여했다.
Juvavum 은 알프스 남북을 이어주는 통상 길목도시로서 서로마제국당시 번영을 누렸다.
7세기 말경 프랑크 왕국 보름스에서부터 루페르트 주교가 부임한 후 짤츠부르크는 새로워진다.
그는 서민들에게 활기를 불러 일으키려고 소금을 대량채굴, 판매한다.
그때부터 이 도시는 소금성 즉 Salzburg 이라 불린다.
8세기 말 카를 대제는 짤츠부르크를 대주교가 통치하는 주교령의 도시로 승인해준다.
16세기 말 짤츠부르크로 부임한 대주교 볼프 디트리히는 오늘날의 짤츠부르크 모습으로
도시를 재단장한다. 즉 UNESCO 가 지정한 서계문화유산 도시가 바로 그 바로크 풍 도시가 된 것이다.
그가 지은 건축물 중에서도 특별히 1606년 단 6개월만에 지은 미라벨궁전과 정원이 유명한데,
이곳 정원에서 Sound of Music 의 몇장면이 촬영되었다.
미라벨 정원의 석상, 분수,계단, 굴넝쿨..
이 성은 원래 그의 애인 살로메 알테와 12명의 자녀들이 살 집을 위해 지은 것으로 그는 소금판매로
워낙 경제력이 막강했던 짤츠부르크를 통치하는 대주교로서 그 재력을 동원해 공사한지 단 6개월만에
성과 정원을 완공한다.
성 이름은 그의 애인의 이름을 따서 알테나우 라고 불렀다. 궁 안 Marvel Hall 에서는 모짜르트가 연주를 하기도 했다.
그는 성직자이지만 세속적 사랑과 영적사랑을 모두 중시하여서 카톨릭 사제의 결혼금지법에도
불구하고 살로메와 공공연히 연인관계를 드러내며 12명의 자녀까지 낳는다. 그러던 중 소금광산을 놓고
바이에른과 전쟁을 하기도 했다. 결국 주변 영주들, 주교들과 관계가 악화되어 도피하다 붙잡혀
호헨짤츠부르크성에 감금 1616년 감옥에서 죽는다.
그의 사촌 마르쿠스 시티쿠스 주교 (1612-1619) 가 부임해서 그의 흔적을 지우기위해 우선 알테나우성을
미라벨로 개명한다. 그 성이 워낙 화려하고 우아해서 이름을 미라벨로 바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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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요시간 10분)
2모짜르트 생가
짤츠부르크는 모차르트 (1756-1791) 의 고향이다.
그는 짤츠부르크 구시가지, 상업과 교통의 중심지인 게트라이데 거리 (Getreidegasse) 9번지에서
레오폴드 모짜르트와 안나 마리아 페어틀 사이에서 7번째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이 집은 4층 건물로 현재 모짜르트 생가 박물관 (Mozart Geburtshaus) 으로 지정 보호 전시되고 있다.
그는 익히 아는 바와같이 수많은 교향곡, 오페라, 피아노 곡 등을 작곡했다.
그는 젊은 시절에는 여행을 다니면서 많은 음악가들과 만났는데, 그중에서 1764년 런던에서 만난
요한 크리스챤 바흐로부터 교향곡 작곡을 배웠으며 이를 바탕으로 수많은 걸작의 교향곡을 작곡한다.
그는 생애 마지막 10년은 주로 비엔나에서 지내면서 전세계인들에게 친숙한 피가로의 결혼식
(Le Nozze di Figaro), 돈 조반니 (Don Giovanni), 마술피리 (Die Zauberfloete) 등을 작곡했다.
이런 음악 천재 모짜르트의 생가는 음악인 뿐만 아니라 모든 일반 관광객들에게도 짤츠부르크에서
가장 유명한 관광명소가 되었다.
이 생가가 위치한 게트라이데 거리 상가들은 금속공예간판들을 걸고 있는데 이는 문맹인들을 위해
상점의 특징을 표현한 것이다 (원시 광고). 이 거리에서 많은 축제들이 행해지기도 하고 성금요일에는
유명한 가두 퍼레이드도 벌어진다.
도보로 다음 목적지까지 이동해요.
(소요시간 10분)
3짤츠부르크 대성당
7세기 말경 프랑크 왕국 보름스에서부터 루페르트 주교가 부임한 후 짤츠부르크는 새로워진다.
그는 서민들에게 활기를 불러 일으키려고 백금으로 불리던 소금을 대량채굴, 판매한다.
그때부터 이 도시는 소금성 즉 Salzburg 이라 불린다.
그는 당시 원시종교를 따르던 사람들에게 카톨릭 기독신앙을 보급하고자 피터 성당,
독일어권에서 가장 오래된 베네딕트 논베르크 수녀원을 설립한다.
8세기 중반에는 비르길 주교가 부임해 대성당을 건축하고 루페르트 주교 시신을 이 대성당
안에다 안치한다. (774 년 9,24 일) 짤츠부르크는 이날을 성 루페르트를 기념하여
공휴일로 지정하고있다.
8세기 후반에 카를 대제는 이제 짤츠부르크를 대주교가 통치하는 주교령의 도시로 승인한다.
그 이후 대주교가 시무하는 대성당은 몇번의 증 개축이 되어오다가 안타깝게도 16세기 대 화재가 발생해 전소된다.
16세기 말경 볼프 디트리히 대주교가 부임해 짤츠부르크 도시를 오늘날의 바로크 풍 도시로 그는 전소한 대성당을 바로크양식으로 신축하려고 했지만 워낙 대공사라서 일단 건축설계만 해 놓는다.
그의 후임으로 그의 사촌인 마르쿠스 시티쿠스 주교 (1612-1619) 가 부임해 대성당 건축을
시작하고 그를 이어 파리스 로드론 주교가 결국 1628년도에 바로크양식의 대성당을 완공한다.
대성당 정면에 이 두 사람을 기념하여 이들의 방패가 조각되어 있다.
모차르트 (1756-1791) 가 이곳 대성당에서 유아세례를 받았다
(세례명 Johannes Chrysostomus Wolfgangus Theophilus Mozart) 지금도 그가 받았던
유아세례조가 본당 뒷편에 있다. 또한 이곳에서 6000개의 파이프로 구성 파이프 오르간이
유명하며, 모짜르트도 이 파이프오르간을 연주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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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요시간 30분)
4짤츠부르크 요새
8세기 후반에 카를 대제는 짤츠부르크를 대주교가 통치하는 주교령의 도시로 승인한다.
이후 신성로마제국 황제 오토 3세는 짤츠부르크에 자치권을 부여하고 독자적인 시장, 화폐발행, 통행세 징수를
허용한다 따라서 짤츠부르크 대주교들은 막대한 경제력으로 짤츠부르크를 기독 도시화 한다.
11세기에 짤츠부르크 요새 (Hohensalzburg) 가 건설되는데 이 당시 서임권 (성직자 임명) 을 두고
신성로마제국 황제와 로마 교황간에 세력다툼이 본격화 되었고 짤츠부르크의 대주교였던 게하르트는
교황편에 섰는데 황제 하인리히 4세의 보복을 대비하여 이 요새를 건설하게 된다.
15세기 후반에 레온하르트 대주교 (1495-1519) 는 오스만터키로부터 짤츠부르크를 보호하기위해
이 요새를 대대적으로 증축 오늘날의 모습으로 만든다.
그의 방패에는 무가 그려져 있는데 일화에 따르면 젊은 시절 밭농사를 좋아해서 무를 키우는데 사람들이
놀리고 무를 던지기도 했단다. 주교가 되고나서 방패에 무를 새겨 넣어서 과거에 그에게 무례히 굴고
농업이란 직업을 천시하던 사람들이 그것을 보고 뉘우치게 했단다.
1800년 나폴레옹이 출현해 순식간에 유럽을 장악하게 되었고 호헨짤츠부르크 요새도 처들어 오게 된다.
이때 콜로레도 대주교는 겁을먹고 짤츠부르크를 버리고 비엔나로 도망가고 결국 프랑스군은 싸움없이
짤츠부르크와 호헨짤츠부르크요새를 차지하며 요새는 군대 막사, 무기저장 창고 및 지하 감옥 등으로 사용된다.
이때부터 유럽에는 신성로마제국이멸망하고 새로운 세력이 형성된다.
짤츠부르크도 이제 주교가 통치하는 주교권 아래의 가톨릭도시가 아니라 나폴레옹을 등에 엎은 바이에른 왕국의
통치아래로 들어간다. 1816 나폴레옹의 워털루 전투 패전후 , 바이에른과 프랑스의 대립으로 주권이 불분명하던
짤츠부르크는 오스트리아 왕국에 편입이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 성은 유럽에서 현존하는 가장 잘 보존된 중세 성 중 하나이다.
1892년 운행되기 시작한 페스퉁스반 (가파른 언덕길을 운행하는 전동 엘리베이터) 를 타고 올라 가면
1분만에 요새에 갈 수 있다. 밑에서부터 걸어 올라가면 30분 정도 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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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요시간 20분)
5상 피터 교회, 묘지
요새에서 짤츠부르크 시내를 다 전망할 수 있는데 바로 밑을 보면 상 피터 교회와 교회공원묘지가 보인다.
이 교회는 7세기 말경 프랑크 왕국 보름스에서부터 루페르트 주교가 부임하여서 지은 것으로서 짤츠부르크에선
가장 오래된 교회이다. 특히 상 페터교회 묘지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영혼의 휴식처로서
Mönchsberg 절벽 밑에 작은 굴 무덤들 (Catakombe, 지하 기도실 포함) 과 , Mozart 의 누나 난네를, 음악의 어머니 하이든 등의 무덤이 있다.
상 피터 교회 뒷편에 있던 상 피터 수녀원 소속 성당은 1592년 프란치스카 수도회에 기증되었고
제단주위에 성화, 조각, 8개 기도단이 짤츠부르크 문화제로 지정이 되어있다.
뾰족한 고딕형 천장은 바로크건축물 일색인 짤츠부르크에서 홍일점 역할을 한다.
도보로 다음 목적지까지 이동해요.
(소요시간 5분)
6짤츠부르크 축제 대극장
모차르트 (1756-1791) 는 1756년 짤츠부르크 구시가지, 상업과 교통의 중심지인 게트라이데 거리 9번지
(Getreidegasse 9, 4층건물) 에서 태어났고 어려서부터 음악 신동으로 불리울 정도로 음악에 대한 깊이가 남달랐다.
그는 피아노 연주곡 뿐만 아니라 오페라, 교향곡 오케스트라 등 수많은 작품을 만들었고, 세계 음악사에 한 획을
그었다. 그는 생애 마지막 10년은 주로 비엔나에서 지내면서 전세계인들에게 친숙한, 피가로의 결혼식
Le Nozze di Figaro, 돈 조반니 Don Giovanni, 마술피리 Die Zauberfloete 등을 작곡했다.
이런 음악 천재 모짜르트의 업적은 세계 음악인들 뿐만 아니라 일반 대중들에게도 인정되고 있었으며,
그의 고향인 짤츠부르크 시에서는 그를 기념하여 짤츠부르크 음악축제를 시작하게 된다.
1842년 그의 생가가 위치한 게트라이데 거리 끝에 모짜르트 광장을 조성하고 모짜르트 동상을 세우면서
기념 음악회를 개최한 것이 이 축제의 기원이다.
1920년 대성당 광장에서 막스 라이너가 예더만 연극을 초연했고 1925년 대주교 마굿간이었던 건물을
개조해 3개의 연극관을 갖춘 페스티벌하우스가(Haus für Mozart)가, 1960년에는 축제 대극장
(gross festspielhaus) 이 건립되어 음악, 연극으로서는 세계최대의 축제를 치룰 수 있게 되었다
7월 중순부터 8월말까지 이 두 공연장과 더불어 대성당 광장 및 짤츠부르크 전역에서 모짜르트의 작품을 연주,
공연한다. 세계각지에서 유명한 인사들도 이기간 많이 방문한다